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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장르 영화 속 역사 의미 및 과학 기술 편
    인문학 2023. 1. 3. 19:53


    SF장르 영화 속 역사의 의미 


        인간이 욕망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류가 시작점부터 인간의 욕망은 현재까지 멈춤이 없다. 1900년대 프랑스 철학자 라캉에 따르면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얻으려는 욕망은 그것을 손에 넣은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처음에는 대상이 실재처럼 보였지만, 대상을 얻는 순간 허상이 되기 때문에 욕망은 남고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라며 욕망의 단계를 욕망의 대상을 실재라고 믿는 과정인 ‘상상계’, 욕망의 대상을 얻는 순간인 ‘상징계’, 욕망이 허상이기에 그 다음 대상을 찾아 나서는 단계인 ‘실재계’로 구분하였다. 즉 인류는 욕망의 첫 단계인 ‘상상계’를 지나지 않고 발전 할 수 없던 것이다. 
        흔히 역사에 관한 영화라 하면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팩션(Faction)’ 영화가 떠오른다. 이러한 영화들은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재구성 했든 또는 그 배경을 차용한 이야기를 만들었든 간에 당시의 풍경이나 유행, 사상 등을 알 수 있는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 또는 사건은 이미 발생한 일종의 과거이며, 즉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으로 빚어낸 최종 결과물로서 그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서 경험주의적이고 귀납적인 사고의 역사로서 기껏 반영한다고 해도 사건이 완료된 현재까지니 당대 사람들이 상상하고 지향하는 미래의 삶 또는 그 세계를 엿볼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당대 사람들의 ‘상상계’를 엿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SF장르의 영화는 인류의 환상과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영화로서, 과거 제작된 SF영화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지향하고 꿈꿔온 미래사회의 모습을, 즉 과거의 미래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SF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1902)은 1900년 초 사람들의 상상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당시의 기술로는 달에 도달할 수 없었기에 달세계라는 환상과 호기심이 SF영화를 통해 반영된 것이다. ‘상상계’의 단계에서 달세계로 가고싶어 하는 환상을 갖게 된 1900년초의 인류는 약 70년이 지난 후에나 ‘상징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달세계에 살고있으리라 믿는 외계생물체에 대한 환상과 함께 실제로 달 여행을 떠난 인류는 환상이 어긋나면서 비로소 환상이 환상으로 남고 다시금 새로운 욕망을 꿈꾸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렇듯 SF영화는 인간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건강하게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준 철학적 장치임에 분명하다. 산업사회와 IT시대가 도래하면서 현재 인류는 첨단기술과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로부터 어떤 모습으로 상상이 되었고 또 현재 인류가 꿈꾸고 상상하는 환상은 과연 무엇일까? 1982년작 리들리스콧의 를 보면 그 해답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1982)는 SF장르 중 사이버펑크에 해당하는 영화로서, 사이버펑크란 과학기술에 대해 무정부주의적, 급진적, 반항적 태도를 지니고 이로 인해 나타난 사회적병폐라던지 부조리, 계급갈등을 경계하는 특징을 지닌다. 영화에서도 리플리칸트의 무법자적 행동과 또 인간과 인조인간의 모호성 등을 드러내며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1980년대 모더니즘 사회가 만들어낸 미래에 대한 환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영화는 영화 속 미래세대인 현대 우리에게 지나친 과학기술의 발달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2015)는 대체역사물 또는 포스트아포칼립스의 한 장르영화로서 현대 인류에게 자원과 환경에 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과학 기술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모든 사람이 인간의 미래를 밝게 보는 것은 아니다.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영화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미래 비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왜 암울한 미래가 펼쳐진다고 생각할까? 
    물론, 인간이 디스토피아를 추구해 갈 리는 없다. 그런데 어쩌면 그러한 미래는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 사회는 훨씬 윤택해져 갈 것이다. 고도의 과학 기술은 식량의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수많은 질병의 치료법이 개발될 것이고, 평균적인 생활 수준의 급격한 향상으로 인해 비록 가난한 자라도 상당한 수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렇게 낙관적인 미래상이, 어째서 어두워지게 되는가?
    현재 많은 사람은, 전자 투표제를 도입하여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늘려 가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 매우 바람직하다. 전자 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의견을 가상공간에서 마음껏 제시할 수 있으므로, 현재 간접 민주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폐해를 줄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보화가 지니는 무서운 힘을 간과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모든 인간이 손쉽게 살아갈 수 있는 정보화 세상은 편한 점에 비해 위험성이 너무나 높다. 우선, 세상이 정보화될수록 정보를 손에 쥐는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되고, 그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간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정리하면, 디스토피아가 되기 전 인류 사회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약간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다 근본적인 문제점에 봉착하여, 그들이 얻게 되는 미래는 암울한 비극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상황은 극단적인 위험 사례이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과학 기술은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각종 대량 파괴 무기의 개발에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과학 기술의 상업화와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자칫 신제품의 개발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만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게 한다.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고 사람들은 필요성이나 장단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기술을 받아들이게 되는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 다양한 도덕적 문제를 남겨 놓았다.
      이처럼 과학 기술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일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고 인간의 삶을 통제하거나 파괴하는 일에 사용될 수도 있다.

     

    과학 기술이 가져오는 삶의 변화와 혜택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중시하고, 사회의 많은 문제를 과학 기술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이를테면, 식량 부족은 농업 기술과 유전 공학으로, 물 부족은 댐 건설로, 화석 연료의 고갈 문제는 원자력 발전이나 재생 에너지 개발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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