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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무의식으로의 초대 >,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란 프롤레타리아>
    인문학 2023. 1. 8. 15:06

    ‘어벤져스’부터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은 열광했던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어 낸다. 일간지 기자다운 예민한 사회적 감수성, 영화 마니아다운 날카로운 통찰로 영화 속에 담긴 사회와 역사, 문화와 일상 등을 다채롭게 담아서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 무의식과 대중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이야기의 맥락을 끊임없이 확장 시키며 대중들을 평론가로 이끌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다름'을 솜씨 좋게 누벼 놓았다. 봉준호 감독은 가장 지금이고 가장 한국적인 빈부 감각을 특유의 언어로 끌어내 객석을 술렁이게 한다. 빈부가 극명하게 갈리는 양자일 때, 대개 그 중간 어디쯤 에고 있을 우리는 편리한 대로 가난한 쪽에 섰다가 남을 도와줄 듯 부자 쪽에 섰다가 하면서 '비판'적인 시선을 피해 다닌다.
    심리학 관점에서 지상(박 사장네), 반지하(기택이네)(문관네)에 사는 사람들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눈다. 의식은 우리가 접하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을 의미하며 전의식은 현재 의식은 하고 있지 않지만 오래전 기억 같은 것을 의미한다. 무의식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자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억 저편의 숨겨져 있는 매우 큰 바다와 같은 인간의 마음 구석을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인간 마음 안에 무의식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무의식을 감추려고 한다. 그것이 바깥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 우리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 어둡고 습한 곳에 사는 사람을 돌봐 주는 마음을 가질 때 전체적인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평등을 강조하는 정부, 복지를 역설하는 정책의 나라에서 어떤 이유인지 빈부 차가 더욱 극심해지고 중산층이 더욱 괴멸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때에 영화는 지속해서 문제의식을 지니고 빈부 차를 낯설고 드러내 주며 이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사회학적인 관점이나 심리적인 관점이나 어둠을 돌봐준다는 관점에서의 이론은 똑같다고 말이다. 즉, 내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무의식에 또 다른 말은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습관 같은 존재, 즉 '냄새'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가난의 냄새, 아무리 아닌 척해도 부자가 지니고 있는 오만하고 게으르며 냉혹하고 이기적인 어떤 냄새, 서로의 냄새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각자의 '편'을 가르며 그가 속해 있는 자리에 그들을 주저앉힌다. 일명 후각적 빈부차인 것이다.
    영화 속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특유의 냄새가 있어."라는 말은 그래서 영화의 후각을 관통한다. 후각적 진실은 기생충들의 변장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선을 순간 이동하려는 그들에게 영원한 절망의 기호다. 아무리 씻어 내려 해도 씻어낼 수 없는 가난은 결국 무의식 냄새라는 이 땅의 빈부 차가 왜 좁혀질 수 없는 것인지를 허탈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생충’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빈부 차에 대해 특히 민감한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자’에 대한 반감과 이로 인한 평등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등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 층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병폐를 한 가족의 집단 사기극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대체자는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르크스 이론처럼 자본주의를 최대한 발전시켜 부를 극도로 축적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하다.
    먼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란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과 부르주아(자본가)계급의 이항 대립적 계급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야기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 발생하여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최종적으로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순으로 이루고 싶어 했던 단 하나의 가치가 "인간해방"이다.
    영화 중반, 이정은이 지하실에 사는 남편을 부르짖고, 지하에서 두 가족이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의 첫 번째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두 가족은 큰 틀에서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가 맞지만, 세부적으론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정은의 남편이 지하에 산다는 점에서 그는 고전적 정의의 프롤레타리아이지만, 가택의 가족은 지상과 지하의 사이인 반지하에 산다는 점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분류해 이 장면에서 이젠 누가 진짜 프롤레타리아인지를 두고 다툰다. 아무도 혁명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가 부르주아(자본)에 대한 충성만을 얘기할 뿐이다.
    두 번째 생각해야 할 장면은 다홍의 생일파티 장면이다. 서로가 부르주아에 기생하고자 하는 대립에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끼리 싸워서 무엇 하는가?” 애초에 그 방향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혁명은 완수되지 못했고, 따라서 계급 혁명은 가택이 부르주아인 박 사장의 심장을 찌르며 완수된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사람의 기분은 찜찜했다. 그러한 이유는 혁명이 실행되었다 해서 달라진 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혁명은 혁명이 아니었다. 단지,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프롤레타리아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즉, 쌍둥이와 같은 존재들끼리 다투고 있던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 철학에서 인간을 실질적으로 형성시키는 것은 욕구나 의식이라기보다는 활동성, 즉 노동이다. 인간 개개인은 사회적재 관계의 기반 위에서 자기의 창조적 잠재성으로부터 나오는 의식적인 활동의 무수한 과정을 거쳐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기우가 마지막에 읊조린 장면에서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란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달성되는즉슨, 사회혁명의 날을 일컫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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