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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허상 속 사회혁명을 위한 다툼 >, <윈드밀>
    인문학 2023. 1. 7. 09:27

    ‘기생충’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빈부 차에 대해 특히 민감한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자’에 대한 반감과 이로 인한 평등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등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슬픔과 두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대로 이 영화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 층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병폐를 한 가족의 집단 사기극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대체자는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르크스 이론처럼 자본주의를 최대한 발전시켜 부를 극도로 축적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하다.
    먼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란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과 부르주아(자본가)계급의 이항 대립적 계급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야기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 발생하여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최종적으로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순으로 이루고 싶어 했던 단 하나의 가치가 "인간해방"이다.
    영화 중반, 문광위 지하실에 사는 남편을 부르짖고, 지하에서 두 가족이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의 첫 번째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두 가족은 큰 틀에서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가 맞지만, 세부적으론 다르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문광위 남편이 지하에 산다는 점에서 그는 고전적 정의의 프롤레타리아이지만, 가택의 가족은 다르다. 가택의 가족은 지상과 지하의 사이인 반지하에 산다는 점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분류된다. 여기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란 마르크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정상적 일용직 노동에 관여하는 최하층 노동자이면서 반동적 음모에 가담하는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두 가족이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이젠 누가 진짜 프롤레타리아인지를 두고 다툰다. 아무도 혁명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가 부르주아(자본)에 대한 충성만을 얘기할 뿐이다.
    두 번째 생각해야 할 장면은 다홍의 생일파티 장면이다. 서로가 부르주아에 기생하고자 하는 대립에서 “프롤레타리아(노동자)끼리 싸워서 무엇 하는가?” 애초에 그 방향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혁명은 완수되지 못했고, 따라서 계급 혁명은 가택이 부르주아인 박 사장의 심장을 찌르며 완수된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사람의 기분은 찜찜했다. 그러한 이유는 혁명이 실행되었다 해서 달라진 점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혁명은 혁명이 아니었다. 단지, 프롤레타리아는 다른 프롤레타리아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즉, 쌍둥이와 같은 존재들끼리 다투고 있던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 철학에서 인간을 실질적으로 형성시키는 것은 욕구나 의식이라기 보다는 활동성, 즉 노동이다. 인간 개개인은 사회적재 관계의 기반 위에서 자기의 창조적 잠재성으로부터 나오는 의식적인 활동의 무수한 과정을 거쳐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 윈드밀 ‘

    ‘윈드밀’은 마치 청춘과도 같다. 오로지 자신에 힘으로 도전해봐야 할 수 있는 그것, 가끔은 아스팔트의 넘어지기도 하도, 가끔은 찬란하게 우리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청춘이란 모름지기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단어 그대로의 표현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의 청춘들은 푸르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고 오히려 가을이 지나 떨어진 낙엽과 같이 쪼그라들고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과 같이 명언을 위장한 궤변들이 청춘들에게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란, 잘못된 사회가 자신들의 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청춘들의 아픔을 정당화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바로 그녀와 혼다의 삶처럼 말이다. 22살의 그녀도 청춘이고 한 때 컵밥 장사가 아닌 다른 꿈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의 현대사회에서는 필요 없는 인력에 대해 잉여 인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단어가 사회 곳곳에서 일상화될 만큼 지금의 사회는 청춘들에게 청춘답지 못한 삶을 살도록 유도하면서 청춘임을 요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부조리한 시선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보고 청춘이라고 말 못할 뿐, 분명 그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오는 현실의 청춘들 이야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이 책은 그 정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를 통해 20대의 청춘들의 삶에 대해 함께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의 청춘들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직접 경험하는 청춘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지표가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지표마저도 통계의 마법으로 감춰지는 현실에서 20대의 사회인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고 자신을 고통에 빠뜨려가며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이것은 그들 자신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 다소 무거운 공기가 주의를 감싸고 있다. 경찰차와 건물주를 피해 ‘푸드 트럭’이라는 하나의 이동 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버티려고 애쓰고 있다. ‘윈드밀’이라는 제목으로 현실에 대해 그것을 청춘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와 그것들이 청춘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으며, 20대 청춘의 일상의 불안함과 괴로움을 대신 전해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20대의 생생한 발언들을 전하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 ‘손타’가 아닌 ‘정민’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현재의 20대는 약하지만, 20대는 언제든지 가장 강해질 수 있는 세대라고 판단하고 있다. 20대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사회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라 기대하며 청춘들이 푸르름을 다시금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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